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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郭象, 252-312)

자성 - 위진 현학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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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性: 위진 현학의 완성 

 

곽상(郭象)은 위진 현학의 완결자이다. 그런데 以討論名敎與自然的關係問題, 爲魏晋玄學的根本目的. 그렇다면, 위진 현학에서 최종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자연과 명교의 문제를 곽상이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위진 현학에서의 그의 역할을 살펴보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왕필은 우주의 본원과 근거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었다. 숭본식말(崇本息末)의 이론이 그것인데, 현상적 세계인 즉 명교가 합리적인 것은 그것이 합리성의 원천인 무 즉 자연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두 세계를 원만하게 연결시키려 하였으나, 여전히 존재성과 가치를 본체의 세계에다 둠으로써 자연에 더 근본적 가치를 둘 수밖에 없는 논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혜강이나 완적 등은 노골적으로 명교를 벗어나서 자연에 따를 것을 제시한다. 여기서 명교와 자연의 단절은 매우 분명하다. 반대로 의 세계 만을 인정하는 숭유론에서도 자연과 명교는 단절된다. 곽상은 이 단절을 통합하여 두 세계를 조화시키려고 하는데, 여전히 자성개념에 근거하여 이 과업을 완수한다.

 

장자가 유외유내보다 더 높게 보는 것과 달리 그의 해석자 곽상은 常游外以弘內를 말한다. 그것을 비유적으로 몸은 비록 묘당에 있지만, 마음은 산림 속에 있는 것과 다름없다라는 것으로 표현한다. 곽상은 내와 외를 통일하려고 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명교의 현실적인 삶 속에서 정신적인 세계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전적으로 정신적인 면으로 해소한다면 그것은 곽상 철학의 전체적인 면모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명교의 현실적인 삶이라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연적인 자성을 외적으로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곽상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개별자들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 개별자들은 각자의 을 근거로 독립 자족한다. 이 각각이 가지고 있는 이 자성에는 한계와 범위가 정해져 있고,(“物各有性性各有極”) 이 한계와 범위 속에서 자성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이 각 개물들의 자기실현이다. 이 자기 실현이 본성의 한계 내에서 충분히 성취되는 것이 바로 소요이고, 그 본성에 따라 제대로 발휘되는 과정은 바로 무위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명교란 현실을 지배하는 가치 체계나 제도 혹은 현실적 활동을 가리킨다. 곽상에게 있어서 이 구체적 삶은 모두 자연적으로 부여 받은 자성의 실현 과정일 뿐이다. 장자는 인위성과 천연성을 구분한 후, 천연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장자추수에서 소나 말에 다리가 넷인 것은 천연적인 것이고, 말머리에 고삐를 달고, 소의 코를 뚫는 것은 바로 인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것으로 천연적인 것을 파괴하지 말라고 한다. 곽상은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한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소를 부리거나 말을 타지 않고도 가능한가? 소를 부리고 말을 타는데 고삐를 달지 않고 또 코를 뚫지 않고도 가능한가? 소나 말이 고삐를 달거나 코를 뚫는 일을 감당하는 것은 천명에 비추어보아 그것이 진실로 마땅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천명에 딱 들어맞는 일이라면 비록 인간의 작위가 들어간 것이라고 해도 본래는 자연적인 것이다.” 여기서 천명은 바로 천성과 같은 말이다. 왜냐하면, “천이라는 것은 자연이라는 말인데자연적인 것은 바로 성으로 연결되고, “또한 인위적이지 않고 모두 자연적인 것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곽상에게 있어서는 각자의 성명을 편안히 받아들인다”와 같은 용법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연용(連用)되어 하나의 의미를 형성한다. 두 개념이 매우 밀접한 의미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나 은 모두 자연적으로 부여받은 것으로서 그러한 원인을 알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인위적인 조작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외적으로 사물이 발전하는 필연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은 사물이 존재하는 내적인 근거와 규정성을 말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말에 고삐를 달고 소의 코를 뚫는 일이 말이나 소의 천성을 위배하는 인위적 조작이 아니라 바로 천성에 합당한 것이 된다. 소나 말에 고삐를 달고 코를 뚫는 일은 어디까지나 말이나 소에 인위적 조작을 가하는 일로서 명교의 범위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인위적 명교가 바로 고삐를 달고 코를 뚫도록 되어 있는 천성을 발현하는 일이 되어서 명교자연이 하나의 작업 안에서 통일되어버리는 것이다. 소나 말에 대한 인간의 행위 또한 이러하다. 즉 인간은 소나 말에 고삐를 달거나 코를 뚫어서 부릴 수 있는 천성을 자연적으로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소나 말에 대해서 하는 행위는 인위적 조작이 아니라 인간 천성의 발현인 것이다. 따라서 소나 말에 대한 인간의 행위 즉 명교도 인간의 천성자연을 발현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인간에게서도 명교자연은 통일된다. 고삐로 묶이고 코를 뚫리는 일[명교]이 소나 말에게서도 자연적 본성의 발현이고, 주동적으로 고삐를 달고 코를 뚫는 일[명교]이 인간에게서도 자연적 본성이 발현된 것이다.

 

이처럼 곽상에게서는 명교로 표현되는 현실적인 모든 삶의 행위가 자연본성을 구체적으로 체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명교는 하나로 통일된다. 위진 현학의 주제였던 자연과 명교를 통일하였다는 의미에서 곽상을 위진 현학의 완결자라 하는데, 역시 이런 통일 내지는 완결도 자성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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