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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M. Foucault, 1926-1984)

광기의 계보학 -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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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구조주의자들이 동시대적인 차원의 공시적 분석과 연구를 진행한 것에 비해 푸코(Michel Paul Foucault)는 역사적 차원을 건드렸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 연구가 아닌 그 시대에 주로 말해지는 것들에 대한 연구로 기존의 역사학과는 다르다. 그것은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에서 사용했던 계보학적 방법을 빌려온 것이다. 

 

계보학(Genealogie)은 17세기부터 한 가족의 족보를 탐구하고 작성한 방법이다. 족보를 탐구하면, 위로 소급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는 부계와 끊임없이 개입되는 모계까지도 연이어 등장하는 가계도를 구성할 수 있고 소급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상이하고도 다양한 역사적 맥락과 이해의 공간이 발생한다. 니체는 이 계보학을 도덕의 원천을 밝히는 데 사용해 도덕이 기억의 계보, 국가의 계보, 종교의 계보, 문명의 계보 등 다양한 원천들과 얽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역사가 하나의 원천을 중심으로 원인과 결과를 주고받으며 일직선상으로 발전해왔다는 전제 자체를 무너뜨린다. 

 

푸코는 계보학을 통해 광인, 광기에 대한 흐름을 추구하며 <광기의 역사>에서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해 제정신과 광기를 분리한다는 생각은  근대에 이르러 시작되었고 그 이전에는 광인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했고 나름대로 사회적 역할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광인은 악마에 사로잡힌 사람이라 죄에 빠져 있는 사람의 전형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격리하기보다는 신앙을 갖게 하고 온몸으로 설교의 기능을 수행케 했다. 그러나 17C 이후 이성을 중시하고 인간 중심 사상이 뿌리내리면서 광인은 격리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근대사회가 표준을 정하고 이에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들을 격리시키고 베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정신병자, 기형인, 부랑자, 거지 등이 비표적인 인간이 되었고 감금을 당했다. 더 나아가 자유사상가, 성도착자, 낭비벽 등도 표준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17C를 대감금의 시대라 부른다. 

 

17C 광인의 감금을 결정하는 사람은 사법관이고 18C에는 의사가 그 결정권자가 된다. 이때부터 광인들은 치료의 대상이 되고 전용시설에 수용된다. 이때부터 부드러운 격리가 되었고 보다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처우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의료와 정치의 결탁은 지식과 권력이 만들어낸 더욱 견고한 지배 형태라고 본다. 

 

푸코는 신체의 통제라는 관점에도 주목한다. 국왕이체론은 칸토로비츠(Hermann Kantorowicz)가 법사상을 연구하면서 만들어낸 개념으로 왕이 진짜 신체를 가리키는 자연적 신체와 감각할 수는 없지만 정치 조직을 움직여 인민을 지도하는 정치적 신체, 이 두 개의 신체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의 시해를 시도한 자들은 정치적 신체를 침범한 것으로 가장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처벌을 받아야 한다. 과거 왕정 시대에 행해진 화형와 같은 형벌이 그렇다. 그리고 처벌은 축제처럼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구경하며 왕의 정치적 신체가 안전함을 안도하는 것이다. 

 

이런 강압적인 통제는 근대로 접어들어 규제와 교육같은 규율훈련 시스템으로 변모한다. 그 첫번째 예가 감옥이다.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은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원형 감옥 파놉티콘을 설계한다. 푸코는 죄수들이 감시자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감시당한다는 불안과 공포를 겪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스스로 감시하는 자기감시의 효과를 가져온다. 이후 병원, 공장, 학교 등으로 일망감시체제는 확장되고 모든 기관은 규율과 통제를 그 기본 바탕으로 삼는다. 푸코는 이렇듯 거대한 권력기관의 움직임이 아니라 미시적 차원에서의 권력을 포착해 보여준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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