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68세대 철학자’ 푸코에 대한 ‘오해와 왜곡’
허경 ‘푸코 수용사’ 발표
지난해 사후 25주년을 맞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가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학계에서 ‘푸코 르네상스’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68세대 철학자’ ‘포스트구조주의자’ 등으로 분류돼온 푸코의 사상은 <말과 사물>로 대표되는 ‘고고학’ 시기(1960년대),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1>에서 다룬 ‘권력지식’ 시기(70년대), ‘주체화’ 시기(80년대) 등으로 구분된다. 이중 최근 조명되는 부분은 신자유주의적 인간형의 분석에 영감을 준 후기 사상이다. 신자유주의가 자신을 자본으로 생각하고 경영하는 인간을 양산한다는 논의는 푸코에게 의존한다.
이런 ‘푸코 르네상스’가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1980년대부터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해 1990년대 한국 지식인들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교수신문 설문조사)로 선정되기까지 한 푸코는 30년간 우리 학계와 어떤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일까. 허경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가 푸코 수용사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그는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나온 계간지 <인문과학연구> 가을호에 ‘프랑스 철학의 우리말 번역 수용’을 발표한데 이어 겨울 호와 내년 봄 호에는 ‘국내 푸코 수용과 지식인 담론의 변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질 들뢰즈가 쓴 <푸코>(동문선)를 번역했으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마르크 블로흐 대학에서 ‘푸코와 근대성’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허 교수는 “푸코의 주요 저서가 대부분 번역되고 많은 해설서가 나왔음에도 불구, 전체적이고 균형 잡힌 푸코 사유의 전모는 사실상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 학계가 푸코 사상을 국내 맥락에 따라 편의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푸코는 마르크스의 후계자였다가 탈구조주의자, 신자유주의 비판자로 변모한다. 또 다방면에 걸쳐있는 푸코 사상의 특성상 철학·문학·사회학·역사학·언어학·법학 등 다양한 분야별로 푸코를 수용하면서 긍정적인 의미의 확장과 더불어 필연적인 오해와 왜곡이 발생한 측면이 있다.
국내에 처음 나온 푸코의 저서는 1979년 불문학자 박정자가 번역한 <성은 억압되었는가>(<성의 역사1>)였으나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푸코 연구자 1호인 이광래가 1987년 주요 저서인 <말과 사물>을 번역했고, 계간 <세계의 문학>이 1989년 여름호를 ‘미셸 푸코 특집’으로 꾸미면서 본격 소개됐다. 1990년에는 <성의 역사> 3권외에 한상진·오생근이 편집한 <미셸 푸코론>이 나왔다. 이어 <광기의 역사> <지식의 고고학> <담론의 질서> <감시와 처벌> <임상의학의 탄생> 등 원전을 비롯해 10여종의 푸코 연구서가 90년대 중반까지 쏟아져 나왔다.
허 교수는 “푸코 이론은 단시간 내에 열광적으로, 전폭적으로 수입됐다. 이로 인해 독일철학, 영미철학, 비제도권의 마르크스철학으로 삼분됐던 당시 국내 철학계에 프랑스철학이 도입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푸코는 단지 푸코에 그치지 않고 들뢰즈, 가타리, 라캉, 데리다, 레비나스, 부르디외, 알튀세르 등 프랑스철학이 국내에 들어오는 물꼬를 텄다.
문제는 푸코의 소비양식이다. 허 교수에 따르면 푸코는 1990년대 초반 김영삼 정부 집권, 소련 붕괴 등 국내외 정치상황이 변하면서 마르크스철학의 대안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논문 모음집<미셸 푸코론>을 펴낸 사회학자 한상진은 “권력이 벌거벗은 폭력으로 행사되는 시기로부터 정당성과 합법성의 외양을 갖춘 권력의 형태로 이전해갈 때 푸코가 제안한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적실성을 갖는다”고 밝힌다. 그러나 허 교수는 이 논문집의 일부 글이 푸코의 권력지식 개념을 마르크스 식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1990년대 중반이 되면 푸코는 포스트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 특히 문학·예술적 맥락에서 수용된다. 허교수는 “‘포스트’ 주의가 탈이성을 특징으로 하는 반면, 푸코는 이성이 복수로 존재한다는 입장”이라고 차이점을 소개했다. 이어 1990년대 후반의 푸코는 김진균, 이진경 등의 필자에 의해 서구중심성의 극복이란 탈근대, 탈제국주의, 탈오리엔탈리즘의 맥락에 동원된다.
허 교수 논문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최근 ‘푸코 르네상스’는 인간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권력의 새로운 지배방식인 ‘생명권력’, ‘생명정치’을 설명하는 게 주안점이다. 푸코는 후기사상을 엿볼 수 있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에서 1970년대 말 이를 ‘통치성’이란 개념으로 제시한다. 구미 학계에서 2000년대 이후 공백기를 거쳐 재발견된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예견한 학자로 주목받는다. 사회학자 서동진의 근작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역사> 등이 이런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허교수는 “푸코가 교수로 재직했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국내에 아직 절반도 나오지 못한 만큼 전체 사상의 윤곽이 밝혀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그를 신봉하거나 우상화하지 않고 우리 학계에 필요한 시사점을 찾는 게 푸코 연구자들의 과제”라고 밝혔다.
12101206 / 허경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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