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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xagoras(기500-428)/아낙사고라스

정신과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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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물질 -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는 BC 500년에 스뮈르나 근처의 클라초메나이에서 태어났고, BC 460년경 아테네로 이주하였다. 그는 이오니아의 자연주의를 서쪽의 아테네로 옮겨놓은 사람이다. 당시 아테네에는 철학을 하거나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는 도시였다. 그는 아테네에서 천체(해)가 경배대상인 신이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붉고 뜨거운 바위라고 주장하여 불경죄로 고소당하기도 하였으며, 나중에는 동쪽의 람파코스로 떠나버렸다.

 

467년 트라키아의 아이고스포타미에 떨어진 운석을 예측했다는 믿기 힘든 전설이 있을 정도로 아낙사고라스는 천문학에 대해 이오니아적인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낙사고라스는 운석을 토대로 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추측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유분방한 이오니아적 사고는 보수적인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아낙사고라스는 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미신 일반을 모두 거부했다. 아낙사로라스는 당시 아테네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와 친분을 맺고 있었다. 플루타르코스의 「페리클레스의 생애」에 따르면, 페리클레스는 언젠가 머리 한가운데에 단지 하나의 뿔만이 나와 있는 숫양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것을 본 라몬이라는 사람은 페리클레스의 영토에서 이런 이상한 생명체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지배자가 되리라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는 그 숫양의 머리를 절개해서 마치 유니콘의 뿔 같은 것이 숫양의 뇌가 손상을 입어 생긴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페리클레스가 아낙사고라스의 교분을 통해서 “보다 고급스러운 철학을 배우고 사고를 단련할 수 있었으며”, 또 “사물들의 원인들을 무지하고 신비스런 것으로 돌리는 미신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전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낙사고라스의 사유가 사물 사이의 기계론적 인과관계에만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그것들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해 지나치게 좁은 과학적 관심사에 제한되어 있다며 비판했다. 아낙사고라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이런 비판은 철학의 역사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그 이유는 철학의 대상이 자연에 대한 사변적 연구에서 인간에 대한 진지한 도덕적 연구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300년 후 키케로는 이렇게 얘기한다.

 

먼 고대로부터 소크라테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수와 운동을, 만물의 생성 문제를, 천체의 크기와 그것들을 분할하는 공간을, 천체들의 궤적을 비롯한 여러 천문학적 문제들을 다루어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늘로부터 끌어내린 첫 번째의 인물이었으며, 그것을 사람들의 곁으로 데려왔다. ... 그리고 철학으로 하여금 삶과 도덕에 대한, 선한 일과 악한 일에 대한 물음들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의 과학적 측면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런 탐구가 너무 논쟁만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경쟁적인 학파 중에서 도대체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더 주된 이유는 그가 인간과 인간의 행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젊은 시절의 소크라테스는 자연과학이라고 불리는 탐구 분야에 큰 열정을 가졌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런 사변들에 그 스스로 부적합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낙사고라스의 책을 통해 ‘모든 것의 질서를 창출하며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것은 이성Nous' 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 얘기는 소크라테스를 기쁘게 했다. 이성이 만물의 원인이라는 것은 옳은 생각으로 보였고, 그는 그렇다면 이성이 모든 것에 질서를 주고, 모든 것이 최선의 방식으로 개별적 사물들을 정돈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물이 왜 생기고 없어지고 또 지속하는지 알려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사물에 있어 최선의 상태는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아낙사고라스의 책을 읽어가면서 곧 실망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사물들의 질서가 이성에 근거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그렇게 존재하는 이유가 곧 그 존재방식이 최선이기 때문이라는 설명 외에 다른 설명을 제시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낙사고라스는 여전히 사물의 원인들로서 공기와 에테르, 물, 그리고 다른 많은 불합리한 것들을 제시하였고, 이성을 세계 질서를 설명하는데 사용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즉, 아낙사고라스의 이성은 그 이전부터 내려온 질료의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낙사고라스의 종자들

 

아낙사고라스는 엠페도클레스와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어딘가 전혀 다른 곳에 도달했다. 엠페도클레스가 파르메니데스의 영원하고 파괴 불가능한 一者를 사등분했고 그래서 영원하고 파괴 불가능한 넷Four에 도달했다면, 아낙사고라스는 더욱 야심찬 형이상학적 複數化를 수행했다. 그는 모든 실체들을 영원한, 창조되지 않은, 파괴 불가능한 존재들로 만들었다.

 

“어떻게 머리카락이 머리카락이 아닌 것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었을까?” 그는 無 또는 다른 어떤 것(음식)으로부터 무엇인가(머리카락)가 생겨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실체가 많은 다른 것들의 작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 몸에 양분을 제공하고 머리카락, 뼈 등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처음부터 그 안에 머리카락, 뼈 등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나의 사물이 외관상 다른 사물로 전환될 수 있는가를 해결해준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전의 사물에 언제나 ‘새로운’ 실체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말하며, 따라서 사실상 어떤 새로운 것도 생겨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낙사고라스는 절대적으로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듯이 보이며, 그래서 모든 실체는 다른 ‘많은’ 실체들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실체를 그 안에 포함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빵이라 부르는 것은 또한 그 안에 살, 물, 흙, 밀가루, 금,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이것들의 양이 너무나도 적어서 우리는 그것들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낙사고라스는 감각感覺이 세계로의 포괄적이고 정확한 안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모든 사물들(예컨대 빵)의 비가시적인 부분(빵으로부터 변할 수 있는 살이나 피)들을 가리키면서, 아낙사고라스는 이 실체들이 “오로지 이성만이 파악할 수 있는 부분들”이라고 말한다. 그가 의미하는 바는 자신의 생각이 이성에 의한 추론이지 감각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성理性만이 빵이 다른 사물들의 미세한 부분들을 포함한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핵심적인 논변은 곧 이성에 입각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떻게 빵이 우리 몸속에서 다른 실체들로 변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양분을 제공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는 4원소들이 다양하게 결합하고 분리됨으로써, 그리고 현상의 사물들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사랑과 미움이라는 두 힘을 제시함으로써 우주 전체를 통해 물질이 배열되도록 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반면, 아낙사고라스는 그보다는 덜 현란했지만 좀 더 상상력이 넘치는 해결책, 즉 이성을 제시했다. 그는 태초에는 서로 엉켜있는 모든 실체들로 떠 있는 부동의 미분화된 질료 덩어리만이 있었는데 이성이 여기에 運動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운동에 대한 그의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는 단지 모든 운동의 원인으로 그의 신비스러운 ‘이성’을 제시했을 뿐이다. 아낙사고라스가 이성을 “모든 것에 대한 지식과 가장 위대한 力能”을 가진 존재로, 그리고 일반적인 질료와는 달리 “무한하며 자기 조절적이고self-ruled, 유일한”존재로 묘사했지만, 그의 사고가 세계에 대한 이원론적 견해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아낙사고라스는 이성을 물질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가 아니라 물질의 어떤 특수한 형태로서 생각했다. 그는 이성을 미세하고 순수한 실체이며, 공간을 차지하는 존재라며 물질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서술했다. 소크라테스가 실망을 느꼈듯이, 아낙사고라스의 이론에 있어서 이성은 우주 탄생 시 잠깐 모습을 드러낸 후 곧 사라진다. 무기적인 물질이 관련된 한, 그것의 운동을 가능하게 한 이후에 이성의역할은 더 이상 필요 없는 듯이 보인다. 대신 곧이어 비인격적인 자연적인 원인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아낙사고라스가 사유한 대상 중에는 기상학적, 생물학적, 우주론적, 천문학적 문제들도 있었으며, 또 지각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는 달이 해로부터 빛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고, 또 지구에 드리우는 어두움이 월식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별들은 회전하는 지구로부터 떨어져나간 돌들이 그 속도 때문에 열에 의해 빛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The Dream of Panorama / Anthony Gottli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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